찰나의 공간
답답해. 소녀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꽉 막힌 사방에서 적막하게 울리는 소리는 오로지 딱딱한 기계음뿐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어머니와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지금 우리나라의 의학 기술로는 마땅한 방안이 없다고 그러시던데.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죽는 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생각해 볼 이유조차 없었던 죽음이 한달음에 찾아오는 그 기분에 소녀는 자신의 팔을 문질렀다.
팔에 주렁주렁 달린 링거 선조차도 이렇게 불편하고 매일 맡는 독한 주사도 이렇게나 아픈데 만약 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이없게도 그 순간에 소녀에게 드는 생각은 공포가 아닌 호기심에 가까웠다.
병실의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주치의 의사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은 소녀에게 여러 가지 점을 물어보았고 그 질문에 소녀는 익숙한 듯 대답을 하였다.
잠깐 침묵을 고수하던 선생의 입이 조심스레 열렸다.
선생님이 잘 아는 병원이 있어. 그곳에 가면 이렇게 답답하게 안에만 있지 않아도 되고,
바깥 공기가 좋아 원하는 만큼 산책하러 나가도 좋단다. 병원 근처의 하늘도 굉장히 멋지고 말이야. 어떻게 생각하니?
소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많이 답답하던 참이었다.
선생은 소녀에게 다정하게 웃어주더니 이내 병실을 나섰다. 소녀의 눈이 천천히 허공을 향했다.
하늘. 소녀는 자신이 덮고 있던 이불을 약하게 움켜쥐었다.
소녀가 도착한 병원은 한적한 시골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청명하고 푸른 하늘에 눈이 멀어버리기라도 하는 듯이, 소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옆에서 간간이 어머니가 말을 걸어주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소녀는 그런 어머니가 너무도 힘들어 보이는 걸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인제 그만 가보셔도 돼요, 어머니. 전 여기서도 잘 지낼 수 있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내는 소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차올라 있었다. 그래, 잘 지내고 있어야 한단다.
다짐하는 목소리로 몇 번이고 그리 읊조리던 어머니가 타고 왔던 자가용을 타고 돌아가자,
소녀는 덩그러니 평야 한복판에 서 있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올려다본 하늘은, 여전히 드높고 푸르렀다.
텅 빈 저 공간이 마치 내 안에도 있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드는 기분이였다.
이곳의 간호사 언니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5일 후면 본원 병원에서 모든 수술 준비가 끝나있을 테니,
그동안만이라도 바깥세상에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라고.
다들 나를 보면 연민의 눈빛과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왜 다들 그렇게 나를 보는 걸까?
소녀는 새 병실 침대 위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그 사이에 머리를 파묻었다.
눈 깜짝할 새 삼 일이 지났다. 이제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면 다시 원래 있던 병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면 분명 아주 큰 수술을 하게 될 것이다.
몇 번이고 병명에 관해 물어보았지만, 모두가 대답을 회피했다. 하지만 소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병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종류의 병이였다는 것을.
방안이 없다고 얘기를 나누는 걸 들었는데 그래도 수술을 시도해보기는 하려나 보다.
병원 근처에 넓게 펼쳐져 있는 낮은 언덕배기에 누운 채로 소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직의 시각 위로 보이는 둥근 하늘이 온 세상을 휘감고 있다.
어제는 유난히도 새털구름이 많았는데 또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그 하늘 아래 미동도 없이 누워있던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이곳의 하늘은 지금까지 소녀가 봐왔던 그 어떤 하늘보다도 멋지고 맑고, 또한 아름다웠다.
고층빌딩이나 네온사인이 없는 이 한적한 시골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광경이다.
막힘없이 뻥 뚫린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하늘 아래에 서 있으면 초라하고 메마른 자신조차도 푸르게 빛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내일이면 이 아름다운 영원의 하늘과도 작별이구나. 언제 또다시 볼 수 있을까?
이 짧은 목숨이 저 하늘이 지닌 영원함 일부분이라도 닮았으면 좋을련만, 아무래도 그건 사치인 것 같아.
소녀가 힘없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 지었다.
이만 가야지. 가야 할 시간이야. 그렇게 소녀는 하늘을 등지고 걸어갔다.
원래의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할 곳으로. 어쩌면 이 짧은 시간 동안 즐겼던 저 하늘은 찰나의 환상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환상이라 하여도, 그 시간이 자신의 짧은 삶에 몇 없던 행복을 가져다주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
또 만나. 마치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하는듯한 작은 목소리가, 아무도 없는 평원으로 스치듯 사라져 갔다.

writer. 채란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