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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람아

writer.최마호

"이젠 가도 괜찮아요. 원망 안할테니까."

"안가요. 죽어라고 욕하고 가라고 해도 안갈거니까 가라고 하지 말아요."

"왜 안가요? 내가 이렇게 되어 버렸는데. 더이상 당신의 얼굴도 손도 만지지 못하고

선물도 어느 하나 제대로 해줄 수 없게 되어 버렸는데."
"그래서 더 못가요. 어차피 난 당신에게 그런거 바란적도 없잖아요?"
 

햇빛이 따사로이 창문을 지나 두사람을 비춘다. 눈에 붕대를 감고 허우적 대는 남자의 손을 살며시 곁에 앉은 여자가 잡는다.

남자는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론 죄의식에 시달렸다. 오묘하게 올라가있는 남자의 입꼬리를 여자가 슬며시 내려준다.

 

"웃을거면 웃기만하고 슬퍼할거면 슬퍼만 해요. 같이 하다간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 버리잖아요."
"그렇지만 그럴 수가 없는 걸요."
"그럼 그냥 웃어요. 웃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걸요."
"내가 어떻게 웃어요. 이렇게 나쁜 이기적인 사람인데."

"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니까 그냥 웃어요. 아무도 뭐라할 사람 없어요."
 

병실의 문이 열리고 하이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그의 등을 일으켜 앉혔다.

의사는 여자를 조용히 불렀고 남자는 간호사들이 자신의 눈에 감겨있는 붕대를 풀기 쉽도록 온몸에 힘을 뺀 채 기다렸다.

의사는 여자에게 남자가 다시 볼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고 조심스레 알렸다. 사실상 실명이라면서.

여자에게는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의사의 말을 듣고는 그 희망이 와장창 깨졌다.

그렇지만 여자는 그 일로 슬퍼하거나 망연자실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렇게 다시 남자 앞에 나타났다.

 

그 사이 남자는 눈에 감겼던 붕대가 풀렸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는 미친듯이 괴로워졌다. 여태까지 붕대탓을 해가며 이것을 벗어던지면 다시 여자의 아름다운 얼굴을 볼 수 있다 여겼다.

하지만 이제 아무것도 볼 수 없음이 사실이 되었고 여자는 이런 못난 자신에게 자꾸만 미래를 기약하려 한다.

남자는 끝도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여자가 다가오는 발걸음에 얼굴을 숙이고 여자의 얼굴을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여자는 다가오다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섰다. 남자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다섯걸음 뒤에서 지켜봤다.

여자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자신이 남자에게 더욱 심한 상처를 남기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이 슬퍼졌다.

남자는 보이지 않자 극도로 민감해진 청력에 여자가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또다시 괴로워졌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슬픔이라고 여긴 탓이다. 사실은 그것이 아님에도

 

"거봐요. 당신도 울잖아요. 내가 이렇게 되어버려서 울잖아요."
"아니에요. 왜 그렇게만 생각해요. 내가 당신에게 큰 상처가 되어버렸으니 어떻게 울지 않을 수가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신이 왜 상처가 된다고 생각해요?"
"나때문에 당신이 얼굴도 들지 못하고 그렇게 괴로워하잖아요. 자꾸만 가라고 하잖아요. 내가 가지 않으니까 괴로운게 아닌가요?"
"나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하니까요. 나같은 사람은 그냥 버려두고 좋은사람 만나야 하니까요."
"당신도 충분히 좋은 사람이에요. 제발 가라고 하지 말아줘요."
 

남자는 고개를 들어 손을 허공에 뻗었다. 여자는 그 손을 고이 쥐고 자신의 이마로 가져다 대었다.

조금은 뜨거운 여자의 이마에 남자의 차가운 손이 닿았다.

남자는 흠칫 놀랐지만 이내 그녀의 손을 자신의 다른 손으로 포개어 도닥여 주었다.

 

"미안해요, 내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었어요. 당신이 행복했으면 해서 그랬어요."

"지금도 행복한걸요."
"가라고 않을테니 대신 앞으로 절대 떠날생각일랑 말아요."
"여태까지 봐왔으면서 그래요. 절대 안떠날거에요."
"미안해요 이런 나라서."
"아니에요 이런 당신이라 좋은거니까."

 

 

[눈 맑은 사람아. 마음 맑은 사람아]

문제속의 문장 with 글쟁이 합작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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