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의 작은 아이
writer.릴리.
1
현재 내 나이 27. 그냥 평범한 고등학교를 졸업해 그냥 평범한 대학교를 무난히 졸업하고
전공과는 상관없는 회사에 취직해 평범하고 무난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물론 그러한 평범함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
매일같이 무언가의 실수로 인해 상사에게 깨진다는 점이다.
입사한지 1년이 지나 이제 신입이라는 꼬리표도 떼어야 할 때인데 신입사원보다 더 일처리가 더디었고,
한 가지 일을 두 번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혼날 때마다 매일 듣는 말은 ‘생각이 있는거냐 없는거냐.’ 라던가
‘이렇게 두 번 처리할거면 그냥 한 번에 검토를 쭉 해 본 다음 다시 수정해서 주면 어디 손해라도 보냐.’ 라던가.
‘대체 제대로 하는 일이 뭐가 있냐.’ 라는 소리들. 물론 나라고 잘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실수하고 그러는 것도 아닌데,
너무한 거 아니냐는 투정을 누군가에게 부리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친화력이 없는 난 이 회사에서 거의 외톨이나 다름없었다.
회사 사람들은 처음에야 내게 잘 해주었지만 나는 그들의 친절이 어색하고 불편해 했었고,
그 결과가 이렇게 또 상사에게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위로 한마디 없다는 것이다.
조금은 섭섭한, 하지만 내가 만들어 낸 결과이니 받아들이는 조금은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나는 상사에게 돌려받은 회계자료를
다시 파일을 불러내어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지금 시간은 7시. 퇴근 시간은 8시인데. 오늘도 야간은 틀림없구나, 한숨을 푹 쉬었다.
2
반짝 눈을 뜨고 그다음 헉, 숨을 들이키며 깜짝 놀랐다.
주변은 깜깜하고 오직 내가 틀어놓은 노트북 화면만이 반짝 빛을 뿜고 있었다.
노트북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10시였다.
언제 이렇게 시간을 보낸 건지, 다 끝내가던 중 깜박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조금 더 수정한 후 저장하고 노트북을 끄고 뻐근한 허리를 푼 후 겉옷과 가방을 챙겨 건물 밖으로 나왔다.
깜깜한 밤하늘. 구름에 가려 별 하나 없는 밤하늘. 비라도 오려는지 살짝 비 냄새가 났다.
비 오면 곤란한데, 한숨을 쉬고 지하철로 걸어갔다. 회사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약 2시간,
집에 도착하면 아마 12시정도 되어있을 것 같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근처에서 모텔을 잡고 하룻밤 묵을까 했지만 고개를 도리질하고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을 향했다.
지하철에 도착하니 막차가 곧 도착했고 나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며 그 지하철을 탔고
아무도 없는 빈 지하철 안에서 아무 곳이나 자리 잡아 앉았다.
그리고 이어폰을 껴 노래를 듣다가 또 금방 스르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푹신푹신하고 아름다운 무수한 꽃들이 있는 들판에 앉아있었다. 순백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며
곧 이것이 꿈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분위기와 마음까지 푹신하고 편하게 만들어주는 이곳이 싫지가 않아 깨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들판에서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걸어 다니면서 보이는 형형색색의 꽃들과 작은 동물들.
저만치 떨어져있는 울창한 나무들이 모여 있는 숲 쪽으로 다가가 안으로 들어가니
순해 보이는 동물들이 나를 경계하지 않고 다가왔다.
마치, 내가 어떤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님이 된 듯 했다. 이 나이를 먹고 공주님이라니,
속으로 한심해 하면서도 안일하게 이 곳을, 이런 유치한 생각을 즐기고 있었다.
숲 속 더 깊이 안쪽으로 들어가니 한 오두막집이 보였다.
나는 그 곳으로 가 똑똑 두어번 노크를 하였다. 하지만 안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꿈인데, 들어가도 되겠지? 문을 열자 너무도 쉽게 문이 열려 안으로 들어갔다.
3
집 안은 따듯한 열기로 포근하게 감싸여 있었다.
딱히 바깥이 추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쪽이 더 포근하고 따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벽난로 가까이에 있는 소파에 앉아 이 따스한 포근함을 눈을 감으며 느끼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나를 톡톡 치며 말했다.
“누군데 여기에 함부로 앉아 있는 거야?”
난 급하게 눈을 뜨고 옆을 바라봤다.
한 작은 아이가 나를 보며 입을 삐죽이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아이를 바라보다 이 아이가 누구일지 궁금했다. 내가 현실에서 한 번 봤던 인물인가?
아니, 나는 이런 아이를 본 적이 없다. 푸른 머릿결과 맑고 바다처럼 깊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처럼 생겼지만 사람보다는 어느 요정이라고 말하는 쪽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눈을 떠봤더니 저 쪽에 있는 들판에 있었어. 숲 속으로 들어와 보니 이 집이 보여서 말이야.
노크 했는데 인기척이 없어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들어왔는데, 혹시 기분 상했다면 미안해.”
“그럼 너는 도둑이냐?”
“....아니. 그냥 손님이야.”
“나는 너 같은 손님을 초대한 적이 없어.”
“...미안해. 하지만 여기에 좀 더 있으면 안 될까?”
아이는 샐쭉히 나를 바라보더니 답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좀 더 애원해보고 물어보니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잠시 부엌으로 향해 가더니 쿠키와 차를 가지고 들어와 내 앞에 작은 테이블에 놓고는 말했다.
“그럼 손님이니까 대접을 해야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고마워.”
“네가 손님이라며? 손님은 대접을 해드리는게 예의잖아.”
“...그럼 맛있게 먹을게. 아, 이름이 뭐니?”
아이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름이 없다고 그랬다. 그냥 편한게 부르라면서.
“왜 이름이 없어?”
“부모가 없으니까.”
“왜 안 계셔?”
“난 태어날 때부터 여기에 혼자 있었으니까.
부모가 죽었는지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떻게 알겠어? 그냥 처음부터 혼자였다는 사실밖에 모르고, 혼자서 어떻게든 살아왔어.”
“...저런, 가여워라.”
“가여 울게 뭐있어? 혼자서도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걸? 사람이 없으니 동물들이 친구가 되어주는 걸!”
그러면서 아이는 밝게 웃었다. 마치 아까 들판에서 봤던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처럼. 그러면서 아이는 내게 물었다.
“내가 가여우면 너도 가여운거야?”
“어? 뭐가?”
“그야 너도 혼자라고 생각하잖아? 네 일터에서, 네 집에서.”
나는 아이 앞에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굳혀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다며 방송이 울려 꿈에서 깨어나 버렸다.
꿈에서 깨어나니 아이의 밝은 웃음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4
그 날 이후 아이는 더 이상 꿈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회사에서 상사에게 깨지고 야근을 매일같이 하였다.
주변에서 여전히 친구라고 할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요즘은 혼자서도 괜찮은 편인 것 같았다.
여전히 실수하여 여전히 상사에게 혼나고, 위로를 못 받고 있지만 무언가 마음속에서 변화가 일어난 듯이
꿈속의 작은 아이를 만난 이후엔 불만 보다는 내 스스로가 긍정적으로 힘내자며 응원하고 있었다.나 자신을.
그리고 거울을 보며 아이의 미소를 떠올리며 나도 그렇게 웃어보려고 하였다.
연습하고, 웃음을 지어보고. 이러한 내적인 작은 변화가 주변 환경이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내게 큰 힘을 가져다주었다.
다시 한 번 꿈속에서 그 아이를 만난다면 좋을 것을. 아쉽게도 그 후로 몇 년이 지나도 그 아름다운 들판과 아름다운 숲 속,
그리고 그 따스한 오두막집과 푸르고 맑은 아이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럭저럭 아이를 만나기 전보다는 꽤 좋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평범한 속의 작은 기쁨을.

[밝고 환한 빛으로 들꽃처럼 웃었지요]